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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제에 머물면 내일이 없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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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0-1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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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머물면 내일이 없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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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시인, 전 함안문인협회 회장)

 진달래는 배고픈 꽃

 

진달래는 먹는 꽃/먹을수록 배고픈 꽃//한 잎 두 잎 따먹은 진달래에 취하여/쑥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들던/순이의 소식도 이제는 먼데//예외처럼 서울 갔다 돌아온 사나이는/조을리는 오월의 언덕에 누워/안타까운 진달래만 십는다//진달래는 먹는 꽃/먹을수록 배고픈 꽃. (조연현 진달래전문)


함안군에서는 지난 2019, 경전선공원화사업으로 가야읍 시가지를 관통하는 기찻길을 군민들의 건강증진과 정서함양을 위해 산책이나 조깅을 할 수 있도록 꽃길을 조성하고아라길이라 명명하였다.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혹은 달리기로 건강을 다지는 명품 산책길로 주민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위의 시는 함안군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함안문인협회에서 함안과 연고가 있는 내외 문인을 대상으로 시작품을 엄선하여 산책길을 따라 세운 31편의 시판(詩板)중 하나이다.

 

함안문인협회에서는 이외에도 함주공원, 함안박물관, 입곡군립공원 등에 시판을 세워 군민들의 정서 함양에 기여하고 있다.

 

이 시는 함안면 출신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비평문학을 정립한 문학평론가 석재 조연현(1920~1981) 선생의 시로 진달래꽃을 주제로 쓴 서정시다.

 

진달래꽃은 우리 지방에서 날로 먹기도 하고 화전을 부치거나 술에 담가 먹기도 하는 꽃이다.

 

무엇보다 긴 겨울을 보낸 뒤 매화꽃에 이어 피는 반가운 꽃으로 산록부에 무더기 무더기로 피는 화사한 진분홍으로 보는 사람의 가슴에 봄을 선사하는 꽃이다.

 

그런데, 이 시는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제재(題材)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진달래꽃이건만 서울 갔다 돌아 온 사나이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그런 고향의 정취가 아니다.

 

누구나 동경하는 서울에서의 생활도 평탄하지 못했던지 예외처럼돌아와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으니 안타까이 진달래만 십고 있을 수밖에 없는 우울한 심사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일제 식민지 암흑기라는 사실을 환기한다면 나라 잃은 한 청년이 겪는조을리는 오월의 무기력한 시대상을 표현한 은유적 정서를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연현은 함안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3살의 나이에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재학 중 조회시간에 천황에 대한 경례 거부 사건으로 퇴학을 당하고 중동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흠모하던 김광섭 시인을 담임으로 모시고 문학에 심취하던 중 창씨개명을 반대하다가 이 학교에서도 퇴교를 당하였다.

 

그 뒤 배재고보로 옮겼으며 조광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고 정태용, 유동준과 함께 동인지詩林을 만들어 문학운동을 전개하였다.

 

1939년에는 만주 하얼빈대학을 다니다가 1940년 귀국하여 혜화전문학교(동국대학교 전신)에 진학, 조지훈 등과 더욱 활발한 문학운동에 매진하였다.

 

그 와중에 조선어로 웅변대회를 하겠다고 강행하다 1941년 일경에 끌려가 유치장 신세를 지고 퇴교를 당하였다.

 

하는 일마다 일제의 제약으로 좌절이 되니 그만큼 일제에 대한 배타적 의식이 그의 정신세계에 충만하였으리라는 것은 집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제강점기 아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안고 상경한 서울에서 상아탑을 쌓기는커녕 사사건건 꺾기고 급기야는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여기저기로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와 해방될 때까지 이어진다.

 

???? 대동아공영권의 허구

 

그런데 이먹을수록 배고픈진달래꽃이 80년여 년이 지난 이 평화스러운 함안의 군민들 앞에 소환 되어 뽑혀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시가 친일 글을 쓴 전력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란 것이 그 이유다. 조연현이 친일을 하였다는 근거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11월에 발간한친일인명사전에 있다.

 

아시다시피, 이 사전은 국가나 정부기관에서 발간한 것이 아니다. 친일 대상자의 기준도 국민들의 공의를 거친 것도 아닌 특정 단체의 판단이기 때문에 이 책 발간 이후 수많은 시비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친일인명사전에 조연현의 친일 저술로 지목된 것은, 그가 일본어로 동양지광東洋之光이란 잡지에 실린아세아부흥론서설:亞細亞復興論序說을 문제 삼아 친일의 딱지를 붙인 것이다.

 

이 글이 실린 동양지광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박희도(1889~1952)1939년에 창간한 시사잡지다. 젊은 나이에 저항에 나섰지만 거듭되는 일제의 탄압과 투옥에 굴복 당하지 않았나 싶다.

 

이 글은 친일인명사전에 의하면, 19426월에 동양지광의 현상공모 지상(誌上) 학생웅변대회에서 3등으로 뽑힌 작품이다.

 

그 핵심 내용은, “천재 시인인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이 이미 명치(明治) 36년에 외쳤던아세아는 하나다는 사상이야말로, 오늘날 눈부시게 전개되고 있는 대동아공영권의 사상적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양자 간에 굳이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강창(岡倉)이 종교. 예술적인 측면에서아세아는 하나다라고 말했던 반면, 대동아공영권은 정치적인 의미에서아세아는 하나다라는 사상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략)... 지금은 대동아공영권이라고 하는 현실적인 문제로 제기된 이상, 그리고 그것이 아세아 전체 민족의 의지이기도 한 이상, 우리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대동아공영권이라고 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그 일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로 기술 되어 있다.(친일인명사전.3 P573)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란 무엇인가? 일본이 임진왜란 때, ‘명나라를 정벌하려고하니 길을 빌려 달라며 가도정명(假道征明)이라는 빌미를 앞세우고 조선 침략을 자행하였듯이, 아시아 전체 민족의 공익을 위하여 단결하여야 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앞세워 조선을 발판 삼아 동북아 침략을 미화하는 일본 계략이지 않은가.

 

그 당시 일본은 조선과 만주, 중국의 일부를 손아귀에 넣고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를 차례로 점령하면서 내 거는 명분이 대동아공영권이었다.

 

그런데 조연현은 왜 존경하는 시인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1903년 영국에서 발간한동양의 이상이란 저서에, ‘범아시아주의는 반제국주의 연대의 맥락을 띠고 있으며, 연대조직 내에서 공자(孔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군자는 화합하되 부회뇌동 하지 않는다)이 가능하다라는 미학이론(美學理論)을 동이불화(同而不和:소인은 부화뇌동 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라는대동아공영권을 뒷받침하는 정치논리로 해석 하였을까?

 

그 의문은 쉽게 이해된다. 앞서 여러 학교에서 일본당국을 거스르는 경력이 있는 조연현이었으니 조선총독부 경시청에서는 불영선인(不逞鮮人)으로 분류되어 요시찰(要視察) 꼬리표를 달아 고향 함안경찰서로, 혹은 만주로 가는 곳마다 형사들이 뒷조사를 하고 온갖 협박을 다 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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