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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아라가야 함안, 과거의 역사에서 미래의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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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10-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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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함안, 과거의 역사에서 미래의 역사로


아라가야 유적의 조사성과와 의의, 그리고 미래가치

 

지난해 KBS에서 방영한 ‘한국의 폼페이 아라가야’에서는 기원 전 후부터 6세기 중엽까지 함안을 중심으로 고대국가를 꿈꿨던 아라가야를 새롭게 조명했다. 


서기 79년,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는 화산 폭발로 인해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고대도시 폼페이는 1592년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회화작품들이 발굴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1500년만이다.


 흐름이 멈춰버린 도시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 땅에도 이러한 나라가 있었다. 옛 이름이 아라가야인 함안군이 바로 그곳이다. 


가야 문명의 중심이었던 함안 아라가야


한반도 남쪽 낙동강 유역에 존재했던 가야. 가야는 600년이란 긴 시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와 달리 중앙집권형 고대국가로 이르지 못한 채 신라에 통합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가야는 우리 역사에 기록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아라가야는 폼페이처럼 1500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아라가야는 여러 가야국들을 대표하는 국가였으며 특히, 우수한 토기 제작 기술과 제철기술 등으로 고대 한반도 남부를 주도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말이산고분군. 그 속에서 ‘아라가야’의 실체를 만난다.


함안뉴스는 그동안 발굴된 아라가야의 유물을 토대로 3부에 걸쳐 ‘아라가야의 유적발굴’과 ‘밝혀지는 아라가야의 역사’, ‘아라가야와 함안군’ 등을 주제로 연재한다. 


1. 아라가야의 유적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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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군 가야사담당 조신규 학예연구사


아라가야는 가야의 여러 나라 중 김해 금관가야나 고령 대가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라가야를 최신 조사 성과를 토대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동안 박물관에서도 교과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들은 아라가야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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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라가야 중심유적 분포현황


함안군은 2018년부터 국정과제와 더불어 아라가야 유적에 대한 조사연구 및 정비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세계유산등재를 추진 중인 말이산고분군의 발굴조사 및 정비를 비롯하여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아라가야 왕궁지(가야리유적), 남문외고분군, 안곡산성, 천제산 토기생산유적 등 아라가야를 입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사업의 폭을 넓혀왔다. 


그 결과 그동안 금관가야(김해), 대가야(고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아라가야가 학계와 언론은 물론 대중의 조명을 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나아가 뛰어난 역사적・경관적 가치를 기반으로 가야문화권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문화도시로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그간의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2023년 문화재청 미디어아트 공모사업에 도전하여 경남에서 유일하게 선정되는 쾌거를 거두며 말이산고분군의 세계유산등재와 연계한 역사관광산업으로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난 5년 새롭게 조사된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을 살펴보고 이들이 가진 역사적 의의와 가치, 그리고 이러한 역사문화자원을 지역발전으로 연계하기 위한 전략과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새롭게 조사된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


 1. 말이산 13호분, 5세기 후반 아라가야 왕의 무덤


 말이산 13호분은 말이산고분군의 여러 고분 중 가장 상징적인 곳에 위치한 고분이다. 


고분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말이산고분군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68m로 고분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말이산13호분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츠(谷井濟一)에 의해 발굴되었으나 유리건판사진과 도면 몇 장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았다. 


함안군에서는 말이산13호분의 상징성 회복을 위해 일제 발굴100년이 되는 2018년 우리 손으로 재 발굴을 추진했다. 


2018년 9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이어진 조사 결과 말이산13호분은 길이 8.4m, 너비 2.1m, 높이 1.8m의 정연하게 만들어진 수혈식석곽묘(구덩식돌덧널무덤)로 밝혀졌다. 


동시기 가야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다. 


무덤 안 네 벽은 붉은색 안료로 채색되어 있었으며 남쪽에서 5번째 덮개석은 193개의 별홈이 두수(斗宿), 미수(尾宿), 심수(心宿), 방수(房宿) 등 우리 전통 별자리를 표현하고 있었다. 


또한, 일제강점기 발굴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일부 유물들에서는 중국에서 온 금동제 허리띠장식과 사슴뿔로 만든 왜계(倭系) 장식 등이 출토되어 무덤주인이 당시 국제적 위상을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13호분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고분으로 입지와 무덤내부의 별자리, 채색등이 보여주는 상징성, 출토유물의 국제성을 통해 볼 때 동시기 어느 무덤보다 웅장하게 만들어진 아라가야 왕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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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말이산13호분 일제강점기 조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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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말이산13호 출토 금동제 허리띠장식(상)과 사슴뿔 직호문 장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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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말이산13호분 별자리 덮개석



2. 말이산 45호분, 5세기 전반 아라가야 왕의 무덤


2019년에 조사된 말이산 45호분 역시 재 발굴된 고분이다. 


말이산고분군 북쪽 주능선의 정상부에 위치한(본동마을 뒤편) 45호분은 1986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의 조사 결과 고분이 아닌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고분군 주능선 정상부에 고분이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2018년 다시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고 2019년 무덤의 실체가 드러났다.


조사결과 말이산45호분은 AD400년 무렵 만들어진 고분으로 가야고분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고분이다. 


일반적으로 가야의 고분은 목관묘(널무덤, 1~2세기)-목곽묘(덧널무덤, 3~4세기)-석곽묘(돌덧널무덤, 5세기)-석실묘(돌방무덤, 6세기)로 무덤구조가 변화하며 석곽묘 단계에서부터 거대한 봉분을 쌓아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이산45호분은 봉분을 가진 목곽묘로 목곽묘(덧널무덤)-석곽묘(돌덧널무덤)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는 아라가야의 고분문화가 자체적인 발전과정을 거쳤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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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봉황장식 금동관 


이와 함께 말이산45호분에서는 아라가야 왕권을 상징하는 금동관이 출토되었다. 


두 마리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마주보고 있는 모습의 장식을 가진 금동관은 국내는 물론 동아시아를 통틀어 처음 확인된 형태이다. 


또한 날개를 펼친 두 마리 봉황의 관(冠) 형태를 달리하고 있어 아라가야인들이 봉(鳳)과 황(凰)을 구분하는 도교사상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봉황이 마주보는 형태는 동시기 금속 공예품 중에는 처음 확인된 것으로 유사한 디자인적 모티브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어 고구려와 아라가야와의 관계가 주목된다. 


이러한 금동관의 출현은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동안 금동관이 나오지않아 저평가된 아라가야의 역사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말이산45호분에서 쏟아져나온 사슴모양토기, 집모양토기, 배모양토기, 등잔형토기는 우리나라 고대 상형토기(像形土器, 실제 모양을 본떠 만든 토기)의 정수를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의 건축술과 조선술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보물로 지정이 예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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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말이산45호분 출토 상형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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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말이산75호분 출토 청자연판문완


3. 말이산75호분, 아라가야의 대외교류


말이산고분군 서쪽 가지능선의 끝에 위치한 말이산 75호분은 길이 8.24m, 너비 1.55m, 높이 1.9m의 석곽묘(구덩식돌덧널무덤)으로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고분이다. 


75호분에서는 토기류를 비롯하여 무기류와 말갑옷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이중 가야문화권에서는 처음으로 연꽃무늬청자완 1점이 출토되었다. 


무덤주인의 머리맡에서 출토된 청자완(구경 16.4cm, 높이 9cm)은 굽 위로부터 구연부까지 16개의 연꽃잎이 음각과 양각을 교대로 사용하며 새겨져 있다. 


이러한 형태는 5세기 후반 중국 남조의 월주요, 홍주요 등지에서 제작되어 유행한 대표적인 청자로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한반도의 청자제작은 10세기 초에 이루어짐) 


이러한 청자완이 국내에 출토된 사례로는 풍납토성 출토품과 천안 용원리 석실분 출토품이 있으나 말이산 75호분 출토품이 가장 크고 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사서인 남제서에는 479년 가라왕(加羅王) 하지(荷知)가 남제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자 하지를 보국장군(輔國將軍) 본국왕(本國王)으로 책봉한 기사가 나타난다. 


이전의 연구에서는 대부분 가라왕 하지를 대가야의 왕으로 제시하였지만 실제 대가야의 고분에서 중국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된 예가 없다는 점과 말이산75호분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자완이 출토되었다는 점은 가라왕 하지가 아라가야의 왕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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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청자연판문완 출토현황 및 한중 출토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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