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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라가야의 본래 나라이름은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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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8-2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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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9b1e2baafc8af_c1b6c1a4b7a111.JPG (함안군청 문화관광과 공보담당 조정래)

함안의 옛 지명으로 쓰인 이름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안야국(安邪國)과 안야축지(安邪踧支), 삼국사기 신라본기 내해이사금조에 아라(阿羅), 잡지 물계자전에 아시량국(阿尸良國), 잡지 지리지에 아시량국(阿尸良國)과 아나가야(阿那加耶), 일본서기에 아라(阿羅)와 안라(安羅) 등으로 나옵니다.


조선상고사에는 함안을 「안라가라」라 하고 이두로 安羅(안라), 阿尼羅(아니라), 阿尼良(아니량)으로 썼는데 阿尼良(아니량)이 후세에 와전되어 阿尸羅(아시라)가 되고 阿尸羅(아시라)가 또 와전되어 阿羅(아라)가 됐다고 했으나(박기봉 역 조선상고사 202p) 阿尼羅(아니라), 阿尼良(아니량)으로 쓰인 고서가 없어 이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삼국사기에 가라(加羅)가 아라로 쓰이고 일본서기에도 아라국왕이 대가라(大加羅)국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아라가 가라를 전부 흡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본래 나라이름은 다른 것이라고 봅니다.

일본서기 신공황후 49년 삼월조에 ‘모두 탁순에 모여 신라를 격파했다. 그리하여 비자발(比自㶱), 남가라(南加羅), 훼국(喙國), 안라(安羅), 다라(多羅), 탁순(卓淳), 가라(加羅) 칠국을 평정했다. 다시 서쪽으로 고해진(古奚津)에 가서 남만(南蠻)의 침미다례(忱彌多禮)를 공취해 백제에 주었다. 이에 근초고왕 및 왕자 귀수가 또 군을 이끌고 모였다. 비리(比利), 벽중(辟中), 시미지(市彌支), 반고(半古) 사읍(四邑)이 스스로 항복해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안라와 가라, 남가라까지 다르게 표기하고 있음은 애초에 이들 지역이 다른 이름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라가 등장하는데 이 신라는 아라가야가 일본의 큐슈지역에 개척한 천일창의 신라국을 말하는 것으로 일본서기에 용주국, 신라도 아라가야로 쓰이지만 이는 한반도의 아라가야와 관계가 없으므로 제외합니다.

임나(任那)도 있습니다만 이 임나는 한반도의 아라가야를 백제에 빼앗긴 후 나중에 다시 찾기 위해 잠깐 맡겨둔 땅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본래의 나라이름이 아니므로 역시 제외합니다.

결국 기록에 나타나는 아라가야의 나라 이름은 안야(安邪), 아시량(阿尸良), 아나(阿那), 아라(阿羅), 안라(安羅) 다섯 가지입니다.

단재 신채호선생이 쓴 고사상(古史上) 이두문의 명사 해석법에 의하면 라(羅), 良(량), 盧(로), 奴(노), 婁(루), 那(나), 牙(아), 壤(양), 耶(야), 邪(야)는 모두 「라」로 읽고 뜻은 「川」이며 고구려 사람이 큰 물가에 나라를 세우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라」가 지명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박기봉 역 조선상고문화사 307~309)

또 나라(國)의 고어는 「라라」이며 라라는 본래 나루(津渡)를 가리키던 명사인데 뒤에 나라를 가리키는 명사로 됐으며 이 라라가 줄어서 「라」가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박기봉 역 조선상고사 90p)

아시량의 「시」는 사이시옷으로 쓰였기 때문에 결국 이름의 뒷 글자는 모두 「라」로 읽어 나라이름은 「아라」내지는 「안라」입니다.

그리고 안라의 발음에 대해서는 인제대학교 이영식 교수님의 「아라와 안라를 아우를 수 있는 발음은 아라」에서도 밝혀진 바 있습니다만 한문으로 쓸 때는 安羅로 쓰더라도 읽을 때는 아라로 읽습니다.(함안소식지 2012.7월호)

그리고 재일사학자 겸 소설가로서 「일본고대사와 한국문화」「나의 아리랑 노래」등을 저술한 김달수씨가 1997년 작고하기 전 20년을 넘게 일본 전역을 다니며 조사한 내용을 수록한 「고대한일관계사입문」에도 안라의 발음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일본 나라현 구사츠시의 아나무라(穴村)에 천일창을 숭배하는 안라신사(安羅神社)가 있는데 이 마을이 혈촌이 된 이유가 안라신사가 있어서 그곳을 安那(아나)라고 불렀기 때문에 나중에 음이 같은 穴(아나)로 바뀌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백제에 의한 왜국통치 삼백년사 93p)

이 那(나)는 역시 「라」로 읽히기 때문에 安那(아나)는 아라로 읽히는 것입니다. 역시 같은 페이지에 일본서기에 나오는 이름인 大穴持命, 大穴牟遲命의 穴도 아나로 읽으며 아라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상의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아라가야의 나라이름은 「아라」입니다.

그럼 가야는 어디서 나온 말일까요?

이에 대한 해석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일본서기 신공황후 49년 삼월조에 가라(加羅), 남가라(南加羅)가 나옵니다. 신채호 선생은 가라는 큰 못 또는 큰 늪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으며 냇가에 큰물을 막고 그 주위에 나라를 세웠기에 가라로 칭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빌어 여섯 가라가 있다고 하고는 삼국사기가 신라를 제외한 여섯 가라를 모두 구별 없이 가야(加耶)로 적으면서 가라가 가야로 변했다고 했습니다.(박기봉 역 조선상고사 203p)

이것이 나중에 여섯 가라를 다시 구별하면서 삼국사기에 쓰인 대로 이름 뒤에 가야를 덧붙이게 된 연유입니다.

다만, 720년에 쓰여 고려시대에 쓰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더 정확하다고 보는 일본서기에 가라와 남가라만 나오고 또 삼국사기에는 여섯 가야가 없는 것으로 봐서 삼국유사의 여섯 가라 운운은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봅니다.(이는 김수로왕이 AD42년에 태어나 44년에 가야를 세우고 158세에 죽었다고 하는 내용이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지 사실관계가 부족하다는 데서 더욱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라가야의 본래 이름인 아라를 고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미 가야문화권의 유네스코 등재 등 가야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고착됐기 때문에 본래 나라이름이 아라라는 것만 알고 아라가야로 사용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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