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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함안 3.1운동의 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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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10-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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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칠북 연개의거

3.1운동은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천도교와 이승훈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세력에 한용운을 비롯한 불교계가 호응하여 일으킨 범국민적인 의거이다.

3.1독립운동을 계획할 당시 유림의 대표들과 접촉하였으나 승낙을 받지못하고 부득이 기독교16명, 천도교15명, 불교2명을 민족의 대표로 하여 거사를 실행하였다.

천도교와 기독교에 의해 사전에 준비된 곳을 3월 초순부터 봉기하였으나 유림이 강성한 경남지방에서 비교적 늦게 일어났다.

3월 13일 영산, 밀양에서 일어난 의거를 경남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의거로 보고있다.

그러나 함안군 칠북면 연개장터에서 3월9일 의거가 일어났으니 칠북 연개장터 의거가 경남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의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연개장터는 낙동강 멸포나루 를 이용한 해상교통 중심지이다.

이 나루에까지 바닷물이 밀어 붙이므로 밀포라고 칭하고 가물 때에도 강물이 마르지 않으므로 해상과 육상을 연계하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의령.창녕.영산.남지.수산.밀양 등지에서는 밀포나루를 통하여 육지 농산물이 집결되고 해발 140m의 상천재를 넘으면 마산과 연결되며, 낙동강 하루에서 배가 드나들기 때문에 마산.부산.등지의 해산물이 집결된 곳이다.

이러한 여건은 이 지역을 비교적 빨리 개명(開明)하게 하여 1887년에 이령교회가 설립되었고, 1904년에 경명학교가 개교하였다.

육지 산물과 해산물이 교역되던 연개장은 의거군중을 동원하기 쉬웠고 경찰관 주재소와 거리가 있어 비밀의 유지가 용이하여 의거를 성공적으로 이끌수 있었다.

특히 전국의 민족대표를 선정할 때에 경상남도 대표를 선정하지 못하여 경상북도 대표 이갑성(李甲成)지사가 2월 23일 마산에 와서 창신학교 교사 임학찬과 상남교회 장로 이상소를 만나 경남대표로 추천하려 하였으나, 동의를 얻는데 실패하고 귀경하였다.

2월24일 이 두사람을 잘아는 배동석(裵東奭) 지사를 마산으로 급히 보냈다.

2월25일 밤늦게 도착한 배동석 지사는 부인 김복남(金福南) 여사의 친정인 함안군 칠북면 이령이에서 자고 2월26일 임학찬과 이상소를 만났으나 날인을 받는데 실패하고 다시 처갓집에 자고 귀경하였다.

이때 장인이자 지역유지인 김세민(金世民)장로에게 서울의 독립운동 준비과정을 상세히 보고하였다.

칠북면 이령리에서는 독립선언시위 운동이 2월28일 이전에 싹트기 시작하여 14명의 지역인사가 고종황제의 인산(因山)과 서울3.1운동을 참관하게 되었다.

지세(地勢). 교회. 학교 등의 여건과 개명한 유림들의 우국충정이 기독세력의 실천력과 조화를 이루어 경남에서 제일먼저 의거의 봉화가 칠북연개에서 높이 올랐다.

고종의 인산을 다녀온 14명의 유지(有志)는 3.1독립시위를 참관하고 돌아와 3월6일 이 지역 새말예배당에 29명이 모여 3월9일 연개장날에 의거하기로 하고 대책위원 5명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게 하였다.

3월9일 정오, 수천군중은 총궐기하여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각 마을을 순회하고 해산하였다.

마산경찰서 칠원경찰관 주재소와는 거리가 멀고 비밀이 유지되어 시위는 평화적으로 매듭지었으나, 다음날 정보를 입수한 왜경은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위사실을 부인하고 축소하여 연행자는 모두 훈방되었다.

조선헌병대 사령부의 기록에 “3월10일경부터 함안군 칠원기독교 신도들은 구마산 신도와 기맥을 통하고 장날을 이용하여 소요를 일으키려하였다. 소관 주재소 경찰관은 이를 탐지하고 주모자로 지목되는 자에 대하여 엄중한 설유(說諭: 말로 타이름)를 가한 결과 무사할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3월9일 연개장날 만세운동을 필두로 하여 3월 12일 함안군 대산면 평림장날의거가 일어났으며 3월13일 영산. 밀양. 통영의거, 3월14일 의령의거, 15일 신반의거, 16일 지정의거, 17일 칠곡의거, 18일 진주, 정촌. 삼가의거, 19일 함안. 합천의거, 20일 군북. 대병. 구만의거가 일어났다.

칠북 연개장터를 핵(核)으로 하여 경남지방에 의거가 확산되었으므로 칠북 연개장터 의거는 경남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제는 3.1운동 후에 칠북 연개장을 폐쇄하고 가게를 헐었으며 일본사람만 드나드는 기생술집만 한 남겨두었다.

경찰서장에게독립운동의 시실증명(事實證明)을 요구한 함안읍 의거

3월19일은 함안읍 장날이었다.

3천여 명의 의거군중이 비봉산에서 고천제(告天祭)를 지내고 태평루에서 독립선언식을 엄숙히 거행한 후에 경찰관주재소를 향하여 시가행진을 할때 우렁찬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고 그 기세는 위풍이 당당하였다.

의거군중은 경찰서 유치장을 파괴하여 구속된 안지호(安知鎬)지사를 탈출시키고, 마산경찰서장 기다무리(北村)와 함안경찰서 오하야시(大林)순사부장에게 오늘 3천여 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사실 증명서를 교부하라고 위협하였으나 발급받지 못하였다.

의거군중은 독립운동의 사실증명을 교부받아 파리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에 제출하여 독립을 청원하고 일제의 강제합병을 규탄하려 하였다.

부산지방법원마산지청에서 함안읍 의거로 기소된 지사를 재판할 때 재판장은 판결이유에서“폭도들은 오하야시 순사부장을 구타하면서 밟아 죽인다고 협박하고 기다무라 경찰서장을 구타하면서 오늘 함안군민이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사실 증명서를 작성하라고 강요했다”라고 판시하였다.

이인구(李寅九)는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마산경찰서 함안경찰관 주재소 함안군청 부산지방법원 함안출장소. 함안우체국 등을 습격할 때 깃발을 흔들면서 군중 앞에 서서 돌을 던지고 유리창문과 공용서류를 파손하고 기다무라 경찰서장 및 오하야시 순사부장에게 오늘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요지의 증명서를 작성할 것을 강요하고 만약 작성하지 않을 때는 밟아 죽인다고 협박하면서 기다무라 경찰서장을 구타하였다.

안혁중(安赫中)은 군중을 선동 지휘하였으며 기다무리 서장에게 만세를 부른 사실증명서를 작성하여 날인하라고 강요하였으며 조계승(曺啓承)은경찰 서장에게 독립운동 사실증명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구타한다고 협박하였다.

오하야시 후쿠오(大林福天)순사부장의 증언에서 “군중들은 주재소에 있는 서류함에서 서류를 끄집어내어 흩어버렸기 때문에 주재소 내에는 서류 때문에 빈틈이 없을 정도가 되었으며, 폭도들은 등사판으로 인쇄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경찰서장과 본인에게는 폭행과 협박을 가하면서 밟아 죽인다고 외쳤다. 서장을 주재소 안에서 뒤뜰까지 끌어내어 폭언과 구타를 하면서 모자를 벗겼으며 본인은 태평루 앞과 주재소 안에서 7회 정도 구타 당하였다.또 폭도들은 서장과 본인에 대하여 오늘 조선인이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증명서를 쓰라고 강요했다“고 진술했다.

함안군수 민인호(閔隣鎬)의 증언에서는 “박노일(朴魯一)과 안지호는 마산경찰서장과 함안경찰관 주재소 순사부장에게 독립운동 사실증명을 강요한 자이다. 본 사건의 주모자는 박노일과 안지호로 사료된다.”고 하였으며 순사보 김종률(金鍾律)과 최근호(崔根浩)의 증언에서는 “안혁중. 안지호. 이인구는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하고 경찰서장을 구타하면서 독립운동 사실증명서를 강요했다”고 진술하였다.

이와 같이 독립운동의 사실 증명서는 몇 사람의 일회성요구가 아니라 시위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하여 많은 지사가 발급 받으려 협박과 폭행을 감행했다.

전국에서 1,542회의 3.1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함안읍 의거처럼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기 위하여 일본인 순사부장과 경찰서장에게 독립운동 사실증명서를 요구한 의거는 없다.                      (출처: 이규석著 함안의 항일 독립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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